
예배의 문을 여는 찬송, 그 속의 놀라운 시간 여행
교회 예배에 참석하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찬송가,
바로 통합찬송가(새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주로 예배 시작 시 송영(Doxology)으로 불리며 경건하게 예배의 문을 여는 이 짧고 웅장한 찬송가에는 사실 100년이 넘는 시간 차이를 둔 작사가와 작곡가의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부르는 이 찬송의 가사는 누가 썼고, 곡조는 어디서 왔을까요?
통합찬송가 1장의 역사 속으로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1. 가사: 토머스 켄 주교의 기도와 교육적 유산
“만복의 근원 하나님”의 가사는 17세기 후반 영국의 성공회 주교였던 토머스 켄(Thomas Ken, 1637-1711)이 썼습니다. 놀랍게도 이 가사는 처음부터 독립된 찬송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 학생들을 위한 찬송: 켄 주교는 윈체스터 칼리지 학생들의 신앙 지도를 위해 아침 찬송(“Awake, my soul, and with the sun”)과 저녁 찬송(“All praise to thee, my God, this night”)을 작사했습니다.
- 공통된 마지막 연 ‘송영’: “만복의 근원 하나님…”(Praise God, from Whom all blessings flow…) 부분은 이 두 찬송가의 마지막 연(stanza)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송영(Doxology) 이었습니다.
- 목적: 학생들이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께 영광 돌리는 짧고 핵심적인 찬양을 드리도록 돕기 위한 교육적 목적이 컸습니다.
즉, 이 가사는 특정 곡조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신학적으로 깊고 간결한 찬양 그 자체로 먼저 탄생했습니다.

2. 곡조: 루이 부르주아와 제네바 시편가의 ‘OLD 100TH’
이 찬송의 웅장하고 익숙한 멜로디, 즉 곡조의 이름은 ‘OLD 100TH'(올드 헌드레드스)입니다. 이 곡조는 토머스 켄보다 무려 100년 이상 앞선 16세기 중반 프랑스 작곡가 루이 부르주아(Louis Bourgeois, 1510–1561)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 제네바 시편가: 루이 부르주아는 종교개혁가 장 칼뱅과 함께 제네바에서 ‘제네바 시편가(Genevan Psalter)’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이 시편가는 모든 회중이 예배 시간에 모국어(프랑스어)로 성경의 시편을 노래할 수 있도록 만든 획기적인 찬송 모음집이었습니다.
- ‘OLD 100TH’의 탄생: 부르주아는 1551년 제네바 시편가에 이 곡조를 처음 실었습니다. 당시에는 시편 134편에 붙여졌으나, 후에 시편 100편과 주로 연결되어 불리면서 ‘OLD 100TH'(오래된 100편 곡조)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르주아가 완전히 창작했다기보다 기존 곡조를 편곡/정리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 목적: 기악 연주용이 아닌, 회중이 다 함께 시편 가사를 목소리로 노래하기 위한 곡조였습니다.

3.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만남: 가사와 곡조의 결합
루이 부르주아(16세기)와 토머스 켄(17세기 후반). 어떻게 100년 이상의 시간 차를 두고 만들어진 곡조와 가사가 만나 찬송가 1장이 될 수 있었을까요?
- 운율의 일치: 해답은 ‘운율(Meter)’에 있습니다. 토머스 켄의 송영 가사는 각 행이 8음절, 총 4행으로 이루어진 롱 미터(Long Meter, LM: 8.8.8.8)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루이 부르주아의 ‘OLD 100TH’ 곡조 역시 정확히 같은 롱 미터(LM)였습니다!
- 자연스러운 결합: ‘OLD 100TH’는 당시 영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널리 불리던 LM 곡조였습니다. 켄의 심오한 가사가 마침 이 곡조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곡조 자체도 찬양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켄의 가사를 ‘OLD 100TH’ 곡조에 붙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 의도된 만남이 아닌 운명적 만남: 켄이 ‘OLD 100TH’를 염두에 두고 가사를 쓴 것이 아니라, 훌륭한 가사가 이미 존재하던 가장 적합하고 유명한 곡조와 만나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것입니다.

시대를 초월한 찬양의 울림
통합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은 이처럼 100년의 시간과 다른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가사와 곡조가 만나 이루어진 기적과 같은 찬송입니다. 토머스 켄의 깊은 신앙 고백이 담긴 가사와 루이 부르주아가 터를 닦은 웅장하고 경건한 ‘OLD 100TH’ 곡조의 만남은, 시대를 넘어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송영 중 하나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다음에 찬송가 1장을 부를 때, 이 찬송에 얽힌 놀라운 시간 여행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찬양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혹시 잘못된 정보나 추가 정보가 있으시며 댓글로 남겨주세요. ^^
참고 자료들: 찬송가 해설집(새찬송가 해설집 / 영미권 찬송가 해설집), Hymnary.org, The Canterbury Dictionary of Hymnology, Wikipedia, 교회 음악사 및 일반 음악사 서적, 신학 사전 및 백과사전
※이 글의 이미지와 글의 내용은 ImageFX / Gemini의 도움을 받아서 작성 되었습니다.※